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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서포터즈3기_황미선]윤봉길 의사 작품과 함께 알아보는 상하이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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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55회 작성일 24-04-0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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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서포터즈 황미선님의 게시글  
<윤봉길 의사 작품과 함께 알아보는 상하이 의거>를 소개합니다!
매헌기념관과  서포터즈의 SNS 계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올 한해 동안의 매헌서포터즈 3기 활동에 많은 기대와 응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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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사진은 한인애국단 선서문을 낭독한 후 권총관 수류탄을 들고 촬영한 매헌 윤봉길 의사의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윤봉길 의사'하면 독립운동가로 많이 알고 있지만, 윤봉길 의사가 작품을 잘 쓰는 시인이자 더 나아가 저술가이기도 했다는 것은 많이 알지 못한다. 곧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공원에서 상하이 의거를 일으킨 날이 다가오는 기념으로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의거를 준비하며 적었던 작품들과 함께 자세한 상하이 의거 이야기를 알아보자.

 

 상하이는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윤봉길 의사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상하이를 찾았고, 여러 활동을 펼치며 김구 선생님, 안중근 의사의 둘째 동생인 안공근 의사를 만나 독립운동에 더 본격적을 참여하기 시작했었다. 그러던 중 1932년 4월 20일 상하이 일일신문에 일본 국왕의 생일인 4월 29일 천장절을 맞아 훙커우공원에서 상하이 점령 승리를 기념하는 축하 행사를 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고, 윤봉길 의사는 때가 왔다며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의거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행사에는 오직 도시락과 물통만을 들고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이봉창 의사의 일왕저격사건 때처럼 폭탄이 제대로 안 터지는 일을 막기 위하여 도시락과 물통 모양의 더욱 강력한 폭탄을 준비하고 폭탄을 던지는 연습을 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의거 전, 한인애국단에 입단 후 선서를 하고 사진을 찍은 후에 윤봉길 의사는 김구 선생님이 준 중국 돈 200원으로 훙커우공원에 입장하기 위한 양복을 사 입고, 훙커우공원을 찾아 폭탄을 던질 위치를 찾았다. 공원에서 돌아온 윤봉길 의사는 예산에서 생활하던 모습과 아버지, 어머니, 아내, 아들 종과 담의 모습이 떠올랐고, 이때 김구 선생님이 와서 우리를 위해 남기고 싶은 말이나 글이 있냐는 말에 두 시간 반 정도에 걸쳐 글을 썼다.

 

 이때 자서약력과 함께 글을 4편을 남겼는데,

먼저, 훙커우공원을 답사하며 느낀 생각을 시로

 

홍구공원에서 답청하며

처처한 방초여

명년에 춘색이 이르거든

왕손으로 더불어 같이 오게

청청한 방초여 

명년에 춘색이 이르거든

고려강산에도 다녀가오

다정한 방초여

금년 4월 29일에

방포일성으로 맹서하세

 

그리고 예산에 남아있는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시인

 

강보에 싸인 두 병정(아들)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에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한 사람은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프랑스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마지막으로 조선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긴 시

 

청년 제군들에게

피끓는 청년 제군들은 아는가

무궁화 삼천리 우리 강산에 

왜놈들이 왜 와서 왜 걸대나

피끓는 청년 제군들은 모르는가

돼놈 되 와서 되 가는데

왜놈은 와서 왜 아니 가나

피끓는 청년 제군들은 잠 자는가

동쪽 하늘에 새벽빛은 점점 밝아오는데

조용한 아침이나 광풍이 일어날 듯

피끓는 청년 제군들아 준비하세

군복 입고 총메고 칼 들며

군악 나팔에 발맞추어 행진하세

 

백범 선생에게

높고 웅장한 청산이여, 만물을 품어 기르도다 

울울창창한 소나무여, 사시사철 변함이 없도다

맑고 빛나는 봉황의 날개여, 천 길 높게 날도다

온 세상이 모두 흐림이여, 선생만은 홀로 맑도다 

늙을수록 더욱 건장함이여, 선생의 의기로다

참고 견뎌 원수 갚음이여, 선생의 붉은 정성이로다.

 

이렇게 의미 깊고 좋은 작품인 시 네 편을 통해 전하고 싶은 뜻을 남기고 결전의 날인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김구 선생님과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난 뒤 자신의 6원짜리 시계와 김구 선생님의 2원짜리 시계를 바꾸고, 택시비를 제외한 나머지 돈을 모두 준 뒤에 훙커우공원으로 향했다.

 

 이른 시각에는 중국인 경찰이 경비를 하고 있어 윤봉길 의사는 입장권을 보여주지 않고 훙커우공원에 입장한 뒤에 답사 때 보아두었던 식장의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식이 시작되고, 오전 11시 50분 경 윤봉길 의사는 식단을 향하여 3.6m 정도 앞으로 나아가 물통형 폭탄을 던졌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일본인 인사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고, 가와바타와 시라카와 대장이 후에 사망하고 많은 중상자들이 나왔다. 윤봉길 의사는 도시락 폭탄을 주우려 했으나 일본 헌병과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뭇매를 맞았다. 비록 얼굴부터 허리까지 피가 흘렀지만 헌병대로 끌려가는 윤봉길 의사는 태연하면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상하이 의거 사건은 전세계에 일본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마련한 전승기념행사를 오히려 치욕스러운 날로 만들었고, 일본은 더 나아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공포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만보산 사건으로 감정이 좋지 않던 중국인들을 감동시켜 한국인들에 대한 오해를 풀게 했으며, 중국 최고 통치자인 장제스는 감격했다고 한다.

 

 이처럼 상하이 의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많은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윤봉길 의사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이자, 일본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중국에게는 오해를 풀 수 있는 계기를 선물했던 뜻깊은 의거이다. 윤봉길 의사의 시 네 편과 이 상하이 의거 사건을 함께 보면, 당시 윤봉길 의사의 심정과 상황, 그리고 미래의 우리 청년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마음과 생각을 함께 보면서 더 생생하게 알아가고, 마음 깊이 기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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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29일에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상하의의거를 기념하는 기념식을 개최하니시간과 기회가 되면 번씩 참석해보면 좋을 같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출처]

내용: 불멸의 영웅 매헌 윤봉길 의사_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사진: https://blog.naver.com/slipur/222036216284

 https://shindonga.donga.com/society/article/all/13/34158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