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매헌서포터즈_한수연]6월 21일, 윤봉길 의사 탄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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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윤봉길 의사 탄신일
안녕하세요!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매헌서포터즈 한수연입니다. 6월은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호국, 보훈의 달’인 것 아시나요? 현충일, 민주항쟁 기념일 등 관련한 날이 있고, 또한 윤의사의 탄신일이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6월 21일 탄신일을 기념하여 윤의사의 소년시기에 대해 이야기해드리고자합니다.
1908년 6월 21일 오후 8시,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마을에 ‘우의’라는 이름을 가진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본 이름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봉길’이라는 이름은 독립운동을 할 때에 지은 이름입니다.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건강하게 자란 윤봉길 의사는 11세에 덕산 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어렸을 적부터 애국심이 뛰어나 일본식 교육을 원치 않았습니다, 이듬해 3.1일 운동을 본 후 일본 제국주의의 교육을 거부한다며 12세에 공립 보통학교를 자퇴하였습니다. 이후 최병대의 문하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14세에 오치서숙에 들어가 성주록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사서삼경, 한시를 배우며 중국 고전을 두루 익히고, 한시 300여수 등을 남기며 서숙생활을 마쳤습니다.
이쯤에 매헌이라는 호가 생겼는데, 윤의사가 오치서숙에서 떠날 때 성주록이 조선 세조(世祖)를 몰아내고 단종(端宗)을 복위시키려 했던 사육신(死六臣) 성삼문(成三問)의 호, 매죽헌(梅竹軒)에서 따서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 후에도 학문의 끈을 놓지 않은 윤의사는 신학문에도 관심이 많아 『동아일보』를 구독하였고, 특히 1920년대 초중반 식민지조선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계몽잡지인 『개벽』은 한 호도 빠지지 않고 구해 보면서 민족문제와 농촌문제에 대해서 이해하고, 식민지배에 대항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였습니다.
한학과 신학문을 공부한 윤의사는 농촌부흥운동, 농민계몽, 야학 설립, 독서회 활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농민독본’이라는 책을 저술하고 월진회, 수암 체육회를 조직하여 농촌부흥에 크게 기여한 윤의사는 나라를 위해 보다 큰 뜻을 이루고자 결심하고 23세에 ‘장부출가생불환’이라는 글을 남기고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장부출가생불환’이란 ‘장부가 집을 나서니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우리도 잘 알고 있듯 김구가 주도한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상하이 의거를 결행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소년시기는 어땠나요?
저는 윤의사의 소년시기를 돌아보면서 저 또한 저의 어렸을 적을 돌아보게 되었고, 스스로가 뜻을 이루기 위해 정말 노력하고 있는지 성찰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분도 유년시기를 떠올려보며 스스로에게 칭찬도 하고,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시면서도 6월이 호국 보훈의 달인만큼 다른 때보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힘써주신 분들께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떤지 여쭙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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