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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정보

조국의 어둠을 밝힌 위대한 청년 윤봉길의 독립투쟁사

매헌의 독립운동

"농촌계몽운동"

계몽운동이란 1910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기 전까지 국권을 회복하고자 개화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한 운동으로 이들은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상실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논리로 실력양성론, 자주적인 자강독립론을 주장하였다. 이에 의병투쟁처럼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 않은 무장투쟁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1904년 설립하여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투쟁을 진행한 보안회, 교육 및 산업을 통한 실력 양성을 외친 대한자강회, 국채보상운동, 언론계몽운동, 신민회 활동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외에도 오산학교, 대성학교 등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태극서관, 자기회사 등과 같은 산업활동을 진흥하여 민족자본을 육성하고자 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자행된 무단통치 기간에는 국내에서 국권회복운동이 힘들어지자 만주지역에 독립군 기지를 세워 계몽운동론을 점차 독립전쟁론으로 전환시켰다. 국내에서 잠복기를 가졌던 계몽운동은 1919년 민족역량이 결집된 3·1운동이 계기가 되어 변화된 20년대 문화통치 기간에 다시 꽃을 피웠다. 20년대 독립운동은 10년대와 달리 전 민족적으로 전개되어 이념과 지도노선이 다양화되었고 농민·노동자·여성·청년·학생들에 의한 각 부문 운동이 늘어났고 사회·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되었다. 특히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실행된 민족교육운동, 국학운동, 항일 언론 출판운동, 종교계 민족운동은 독립을 위한 실력양성과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대표적인 실력양성운동으로는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설립운동 등이 있다.

윤봉길의사도 1926년 오치서숙을 졸업하고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농촌에서 이웃들의 무지를 깨우치고 실력을 양성하기 위하여 야학을 설립하고 토론회·강연회·학예회를 개최하였으며, 농촌을 부흥시키기 위한 단체인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다양한 계몽운동을 실행하였다. 윤봉길의사의 농촌계몽운동은 1930년 3월 6일 큰 뜻을 품고 집을 떠나 중국 상하이무대로 진출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민중교육운동"

민중교육운동 및 공동묘지 묘표 사건 역사 기록화

농민운동 기록화(이종상 作)

윤봉길의사는 19살이던 1926년 친구들과 함께 야학당을 개설하였다. 그러나 상하이에서 작성한 자필이력서에 의하면 오치서숙을 졸업하기 전인 17세부터 18세까지 약 2년간 자신의 사랑방에 서당을 차리고 아동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계몽운동에 뛰어든 것은 19살로 그 계기는 공동묘지 묘표사건이었다.

어느 날 공동묘지 쪽에서 낯선 젊은이가 나무로 된 묘표 한 아름을 들고 찾아와 한자를 읽지 못하니 아버지의 이름을 찾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선친 함자가 어떻게 되시오?"
"우리 아버지 이름은 김선득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적힌 묘표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청년은 기뻐했다.

"그런데 혹시 이 푯말을 뽑은 자리에 무슨 표시라도 해두었소?"
"아니요."

청년은 그저 푯말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청년의 부친 묘표는 찾았지만 산소는 잃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청년이 전부 구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윤봉길의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일제 강점 하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총•칼이 아니라 '무지'라는 것을 깨닫고 졸업 후 19세부터 본격적으로 계몽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20년대에는 교육진흥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특히 1910년 이전 구국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가 무단통치기에 잠복했던 야학이 1920년대 교육진흥운동에 힘입어 다시금 활발하게 확산되어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문자를 보급하고 근대학문을 보급하여 실력을 배양하였다. 윤봉길의사가 야학을 설립한 1926년에는 조선일보가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라는 구호를 내걸었고, 1931년 동아일보는 '브 나로드 운동'을 주도하여 문맹퇴치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야학은 문자 보급에서 나아가 한국사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조국의 현실을 깨닫게 하여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윤봉길의사도 마찬가지였다. 야학 설립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교재를 집필하였다. 「농민독본」이라는 세권의 교재를 통해 제1권 에서는 한글을 가르치고 2권에서는 상식적 내용 전달을 통해 민중을 계몽하였으며 3권을 통해 농민과 노동자가 어떤 사람이며 농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나아가 자유에 대한 생각 또한 집필하여 농민들에게 독립의식을 심어주었다. 이외에도 역사와 지리, 산술, 과학, 농사지식 등도 가르쳤다. 야학 강연 이외에도 독서회를 조직하고 연례 강연회를 계획했으며, 정기적으로 학예회를 개최하여 계몽운동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 농민독본

윤봉길의사는 1927년 야학의 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농민독본』 3권을 저술하였다. 제1권 「조선글편」, 제2권 「계몽편」, 제3권 「농민의 앞길」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글편』에는 소리의 갈래,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조선글 맞춤법 등 한글의 기본을 설명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계몽편』에는 인사투, 격언, 편지, 백두산, 조선지도 등 조선인으로써 반드시 알아야 할 예절과 일반상식들이 담겨져 있으며 조선 청년이 가져야 할 마음 자세를 적었다. 「농민의 앞길편」에서는 자주정신과 평등사상을 강조하였으며 자유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농민과 노동자, 양반과 농민, 자유, 농민의 공동정신 등을 통해 농민의 사회적 가치를 확인시키고 농민의 나라인 조선의 힘은 농민에게서 나오므로 미래의 세상은 농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윤봉길의사의 사상과 사회의식이 드러난다.

  • 제1권 조선글편
  • 제2권 계몽편
  • 제3권 농민의 앞길편
농민독본<직해>
제1권 : 조선글편
第一 소리의 갈래
1. 홀소리(母音)
   ㅏ ㅓ ㅗ ㅜ ㅡ ㅣ ㅐ ㅔ .... 8홋홀소리
   ㅑ ㅕ ㅛ ㅠ ㅒ ㅖ .... 거듭 홀소리

2. 닿소리(子音)
   ㄱ ㄲ ㅋ ㆁ ㄷ ㄸ ㅌ ㄴ ㅂ ㅃ ㅍ ㅁ ㅅ ㅆ ㅈ ㅊ ㄹ ᄙ ㅎ

3. 홋소리(單音)
   1. 홋홀소리 ㅏ ㅓ ㅣ......
   2. 홋닿소리 ㄱ ㄴ ㅅ ......
농민독본 제1권 표지

「농민독본」 표지는 종이가 귀하던 시대라 「보통학교 동계 과제장」 겉지를 붙여 사용하였다.

4. 거듭소리(重音)
   1. 거듭홀소리 ㅓ ㅘ ㅝ ㅑ ㅕ ㅣ
   2. 거듭닿소리 ㄺ ㄼ ㅄ ....

5. ㅋ ㅌ ㅍ ㅊ 는 ㄱ ㄷ ㅂ ㅈ 에 ㅎ 가 섞이였으므로 = 섞임거음
   막힌다=마칸다 좋고=조코
   벋힌다=버틴다 좋다=조타
   밥한다=밥판다 않박=안팍
   맞훈다=마춘다 좋지=조치

6. ㅅ ㅆ ㅈ ㅉ ㅊ ㅌ ㄸ ㄷ
   바침에는 다 “ㄷ”소리로 내고
   ㅂ ㅃ ㅍ = “ㅂ”으로 다 내고
   ㄱ ㄲ ㅋ = “ㄱ”과 같이 낸다

보기를 들면
벗(脫)=벋(延), 낫(噐)=낮(晝)=낮(面)
덥(暑)=덮(蓋), 묵(陳)=묶(束)=묵, 낱(個)
벗어서=버서서=벋어서=버더서
낫이=나시, 낮이=나지, 낯이=나치, 낱이=나티,
덮으면=더프면, 묵엇다=무것다, 묶었다=무껏다 (끝)
一, 世세宗종御어製제 訓훈民민正정音음

나라말싸미 中중國귁에 달아 文문字짜와로 서로 사못디 아니할쎄 이런젼차로 어린 百백姓성이 니르고자 홀배이셔도 마참내 제뜨들 시러 펴디 몯핧노미하니라 내 이를 위하야 엿비너겨 새로 스물여덟字짜를 맹가노니 사람 다 하여 스비니겨 날로쓰메 便뼌安한키 하고져 핧 따라미니라

二. 용비어천가

불휘기푼 남감 바라매 아니 뮐세
곶됴코 여름하노니
새미기품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쎄
내해이러 바라래 가나니

◎ 마침

一. 홀소리 -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ㅐ ㅒ ㅔ ㅖ ㅚ ㅛㅣ ㅟ ㅠㅣ ㅢ
二. 닿소리 -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三. 홋소리 -
四. 거듭소리 -
五. 홀받침 - ㄱ ㄴ ㄹ ㅁ ㅂ ㅅ ㅇ
六. 덯받침 - ㄼ ㄺ ㄻ ㅄ ......
七. 덯거듭 - ㄱ ㄷ ㅂ ㅈ ㅅ
짝거듭 : ㄲ ㄸ ㅃ ㅉ ㅆ
섞임거듭 : ㅋ ㅌ ㅍ ㅊ

◎ 조선글 마침법
- 밖 닦다 섞다 깎다 낚다 묶다 솎다 꺾다 엮다
덖다 겪다
- 넋 첫밗 삯 몫
- 닭 삵 흙 기슭 까닭 갉다 굵다 긁다 낡다 늙다
맑다 읽다 묽다 밝다 얽다 옭다 옭다
- 앉다 얹다 끼얹다
- 많다 언짢다 귀찮다 꼲다 끊다 점찮다
- 여덟 넓다 애닳다 밟다 섧다 얇다 짧다 엷다
떫다
- 돌 곬
- 싫다 잃다 꿇다 닳다 곯다 곪다 굻다 닮다 앓다 옳다
끓다 쓿다 뚫다
- 핥다 훑다
- 앎 곪다 굶다 닮다 밞다 삶다 옮다 짊다
ㅁㄱ - 낡굵
- 값 없다 가엾다 시럾다 부지럾다
- 섶 숲 앞 잎 짚 옆 무릎 늪 헝겊
갚다 짚다 깊다 높다 덮다 싶다 엎다
- 읊다
- 낟 빋 걷다 곧다 굳다 닫다 돋다 묻다 붇다 받다
벋다 얻다 쏟다 믿다 싣다 뻗다 뜯다
- 있다
- 젖 낮 곶 갖다 좇다 낮다 늦다 맞다 맺다
잊다 빚다 젖다 갖다 좇다 짖다 찾다 꽂다
부딪다 멋다 찢다 꾸짖다 버릇다 부르짖다
- 윷 낯 닻 돛 몇 꽃 좇다 쫓다
훛다 및다
- 겉 낱 머리밑 밑 밭 곁 끝 팥 솥 샅
뭍 같다 맡다 붙다 맽다 배앝다 흩다 얕다 옅다
- 낳다 넣다 놓다 닿다 젛다 좋다 땋다
빻다 쌓다 찧다 하얗(허옇)다
뽀얗다 깊다랗다 높다랗다 깜얗다
파랗다 껌엏다 노랗다 밝얗다 퍼렇다
누렇다 맑앟다 멁엏다 검엏다
◎ 표음할 字音의 예

1. 地디 - 지 佚딜 - 질 低뎌 - 저 田뎐 - 전
    調됴 - 조 鳥죠 - 조 弟뎨 - 제 帝뎨 - 제
2. 天텬 - 천 鐵털 - 철 貂툐 - 초 體톄 - 체
    替톄 - 체 皆기 - 개 內니 - 내 代디 - 대
    社샤 - 사 長쟝 - 장 全젼 - 전 鮮션 - 건

- 「윤봉길전집」 (896 ~ 910) -제1권 시문과 농민운동- 중 농민독본 내용 발췌

농민독본<직해>
제2권 : 계몽편
(五)이은(상말)격언
(ㄱ) 범에게 물여가도 정신을 일치마라.
(ㄴ) 근강한 신테에 조흔정신이 사느니라.
(ㄷ) 세게를 움지기야거던 내 몸을 먼저 움지기라.
(ㄹ) 때는 한번가고 두 번 오지 아니하느니라.
(ㅁ) 내일에 미루어 조흔 것은 가난 밧게 업나니라.
(ㅂ) 진실은 모든 위대함에 기초니라.
(ㅅ) 종노에서 뺨 맛고 한강에 와서 눈 흘긴다.
(ㅇ) 단단한 땅에라야 물이 고인다.
(ㅈ) 1전을 비웃는 자는 1전에 울때가 잇다.
(ㅊ) 소일고 오양간 곳친다.
(ㅋ) 아는 독키에 발등 직힌다.
(ㅌ) 동정업는 눈에는 눈물이 업나니라.
농민독본 제2권 표지

「농민독본」 계몽편

문병

형님게서 잊흘이나 결석을 하시는고로 선생님께 연고를 여주어 본즉 감기로 편지못하다하오니 듯기에 민망하오이다 그러나 밧분일이 있써써 가사 뵈옵지를 못하 압고 편지로 믓자오니 죄송합니다 아모조록 잘죠섭하셔셔 속히 출석 하시기를 바라나이다

O연 O월 O일 제 김쳥일 재배
[답장]
이쳐럼 위문하야주시니 감사함니다 그젓게 밤에 야학을 맛치고 돌아올때에 별안간 오한이 나드니 그날밤 봇허 신열과 두통이 심하야 어제밤까지는 고동을 하앗으나 오날은 차도가 낫쓰니 념여하신 덕택이올시다 명일붓허는 출석을 하겠사오니 안심하시기를 바라나이다
연월일제 ㅎㅇ 상답셔
인사투

됴션이 예의지국이라 함은 지금까지 우리가 흔이 듯는 말이다 그런데 례의라는 것이 무엇인가 혜아리건데 하날이 내신 바와 땅에셔 생장하는 즁에 오즉 사람이 최귀최령한 제일션상에 섯슴으로 물건보다 특이한 감각의 표증이다

요사이 우리가 흔이 하는 인사가 대가 아래와 갓흐니라.

신연의 인사
· 새해에 기테 엇더하십시요     「어른의게」
· 신구셰 시봉 평안하시요     「동모의게」
· 모시고 과셰 태평이하셨나     「수하의게」
그몸날 인사
· 과셰 안녕이 하십시오     「어른의게」
· 모시고 과셰 평안이 하시오     「동모의게」
· 인제는 격셰안면일셰 글여     「동모」 또는 「수하」
한갑에 대한 인사
· 츈당(남의아버지) 현앙(남의어머니) 회갑이 되시니 얼마나 깁브심닛가
· 감사함니다
초상에 대한 인사
· 상사말삼 무슨 말삼 하오릿가     [조상하는 사람의 말]
    [잇때 상주는 애감한 태도로 "망극함니다"라고 대답함]
· 병환이 계시다는 말씀은 들어스나 이처럼 상사 나실 줄은 쳔만꿈밧거 올시다
    [잇때 상주는 전과갓치 대답함]
· 초증범절은 엇지 치르시고 장례는 어느날노 택일하섯슴닛가
    [잇때 상주는 애감하오이다 사할대로 대답홈]
친척의 상사에 대한 인사
· 슝졔말삼 믓 말삼 하올잇가     [인사하는 사람 말]
· 잇때 복인은 어룬의 상사인시는 부모상의 경우와 갓히 애감의 뜻만 표하고 수하상인시는 가운이 불행한 까닭이올시다
남의 친환에 인사
· 친환이 계시다 하드니 요사이는 좀 엇더하시오     [인사하는 사람말]
    [이때 쥬인은 사실대로 대답홈]
· 의사는 누구를 뵈시고 약은 무슨 약을 쓰심잇가
    [또 사실대로 대답홈]
신병
· 편치 못하다하시드니 좀 엇더 하심닛가    [사실대로 대답홈]
· 신양이 계시다든이 엇더하심니가    [쥬인은 사실대로]
· 약은 날마다 잡수심니가     [사실대로 대답홈]
· 아무쪼록 됴섭하셔셔 속히 쾌복 하시도록 하십시오
    [감사함니다]
화재인사
· 그런 놀라올데가 업슨니다
· 도시 운수 불길한 까닭이 올시다
· 셰간도 만이 태우신 모양이 올시다
    [쥬인은 사실대로 대답홈]
· 사람은 상치 안히하셨스니 가위 불행즁 다행이 올시다
    [이 인사는 위문과 대답 통용홈]
홍수에 대한 인사
· 올갓흔 큰물은 근래에 처음이 올시다 댁에도 상한데가 만흐신 모양이 올시다
    [쥬인은 사실대로]

* 이위에 기록한 인사투는 장셩한 자가 되어 하는 것인데 어린 아해들은 엇더한 경우를 물론하고 절하고 뵈옵는 것이 가하니라

영웅의 야심

셔양 마케도니아왕 필닙이 동셔남북으로 싸움을 하되 대적하리업시 이웃나라를 다 빼을 젹에 태자 알렉산트는 울엇다고한다 자기의 부친이 세게를 다 정복하면 자기가 뒤 날에 임금이 되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니 눈물밧게 업셔슴니다 그 야심은 천리덕도 안니오 인도젹도 안니엇지만은 정계쳥연의 야심으로서는 참말 야심다운 야심이었다 아 제군들아 우리가 압기를 생각하야보면 크고젹은 차별은 잇슬망졍 이와 비슷한 사례가 얼마라도 잇다.

낙심말라

어느 농촌에 사는 어린 부인이 열셰살을 먹어사 아달을 낫다가 불행이 돌도 채 되기 전에 일허 바렸다 그 어린 부인은 작고간자 울엇다 이웃집 로인이 와서 위로를 하느라고 야 - 너의 것흔 졀믄 것들이야 이제라도 몇흘 날는지 모르것는데 무얼 그다지 우느야고 하엿다 그 부인은 위로하는 로인을 밀치면서 나 갓흔 박복한 년이 이졔야 자식을 낳아 보게소 하며 그양 울엇다 참 너머나 방정맛고 용망하야사 이졧것 조소거리가 되엇다 지금 청연들도 이와비슥한 사람들이 만이 잇을줄노 생각한다 나이 한 삼십도 못된것들이 나갓흔 것은 인제는 공부을 할 수가 업다고하는 니가 만코 또는 무슨사업을 하다 사실 패를 한번만 하면이제는 다틀렸다고 너무 낙심을 하야 죽는이도만타 아- 우리사회가 유망이 전개되기를 원한다하면 우리 청연들은 강개한 감졈이 흐르는 동시에 건전한리지쟉 됴화가 잇셔야 할 것이다

백두산

백두산은 도션 북쪽에 잇는 산인되 됴션과 지리의 경겨가 되는니만치 유명이 놉흔 산이다. 이 산은 어느 졈으로 보든지 어느 졈으로 생각하든지 모든 것이 더 이상 야릇한 산이다 삼천리 반도안에 생존하여 잇는 이천만 동포의 한숨과 눈물과 번민과 고통 그 모든 잔인한상태를 셰셰이 살피어 다소 동정하는 듯이 북단에 읏뚝 슷아 잇다 설한풍을 막아 주듯이 건장하고도 엄연한 태도를 뵈이는 듯이 송님은 울울창창하고 또물격과 갓히 굷히엿다 촛아라 굷이굷이 활기잇게 벗힌 그이마로 흘어 나리는 물 근원은 무슨 원한이 잇셔 눈물을 뿌리듯이 흘너나리여 이백리 압록강으로 화하엿더라 아 백두산아 너머너 낙루치마라 그다지 약소한 내 죠션이 안이다

윳놀음
새해에 만흔 행복 누리시기를 바라나이다
윳놀음은 고래의 습관이나 우리 청연이 활기잇게 유쾌이 놀만하기에 이웃 동모들과 제의 집에셔 모으여 자미 즐겁게 소일하기로 상약하엿스니 형님게셔도 빗나게 그때셔 동락하시기를 바라나이다 형님게셔 불참하시면 즐거움이 업을줄노 우리일동 헤아리는 바이니 꼭 오러주시오
제 ㅇㅇㅇ재배
[답장]
새해를 맛즈만거마라사 새일이 생기매 한번도 유쾌이 놀지를 못하얏으니 혐님의 호협하신 풍치로 쳑사 대회를 여태로야 엇지 무심이 잇슬잇가 그날 일즉에 가겟사오니 민은이식위쳔이라니 술이나 만니 쥬션 하소셔
됴션디도

이 지도는 됴선지도인데 남쪽과 번쪽은 길고 동쪽과 서쪽은 자르오 서쪽에는 황해가 잇고 동쪽에는 동해가 에워잇고 남쪽에는 됴선해협 북쪽에는 육지로 연하여 잇슴니다. 이 륙지가 즉 우리가 부르는 청국임니다. 이 됴선반도를 열 세 집으로 나누엇스니 그의 중심디인 경긔도는 우리가 부르짓는 서울이 잇는 곳 임니다. 이 경긔도의 남쪽으로 모조리 따저 보면 충청남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강남도로 연긍하여 잇슴니다. 또, 東(동)으로 따저보면 강원도가 잇슬 뿐 임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찬바람이 부러오는 북쪽으로 따저 봅시다. 횡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가 아닌가. 금강산!은 강원도에 잇고, 평양은 평안남도에 잇고 부산은 경상남도 끗에 됴선해협에 임하여 잊슴니다. 우리 사는 대는 어대인가? 차- 저-봅시 - 다

◎ 九九法
九九法

농민독본에 게재된 윤봉길 의사의 자필 됴션지도

긔경한 현대

우리는 가장 긔경한 이십세기에 산다. 가장 발명이 만한 현대문명이 대 급행으로 발달됨을 따러 우리도 만은 준비를 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 것다 시절은 봄철이 아니요 만물을 죽이는 가을철이다. 그러하니 우리는 삼동 사라나갈 양식도 다시 준비하야 하겟고 의복도 준비하야 격렬한 치위를 당할지라도 겁내지 아니할 것이다

◎ 발명물품
발명물 일홈 나라 년수
인쇄긔 구텐벨의 독일 1840년
사진술 시율쓰 미국 1840년
사진필림 이스도만 미국 xx
활동사진긔 에듸손 미국 1895년
망원경 카리레모 이태리 ×x
긔차 스티분손 영국 1825년
증긔선 폴톤 영국 xx
비행기 타이드 미국 1903년
방적긔계 아구라이드 영국 ×x
가산긔 따르스 미국 xx
전신긔 모-스 미국 1844년
무선전신 닐코니 이태리 1895년
전화긔 베르 미국 xx
축음긔 에듸손 미국 18xx년
전등 푸탓시 미국 xx
화약 베-곤 영국 ×x
기관총 류이쓰 미국 xx
자동차 xxx 영국 1895년
농민독본<직해>
제3권 : 농민의 앞길편
第一課 농민과 노동자
나는 농부요 너는 노동자다.
우리는 똑같은 일하는 사람이다.
높지도 낮지도 아니하다.
나는 밭을 갈고 너는 쇠를 다룬다.
우리들 세상이 잘 되도록 쉬지 말고 일을 하자.
앞으로 앞으로 더욱 더욱 앞으로.
농민독본 제3권 표지

「농민독본」 - 농민의 앞길편

二. 양반과 농민

농민은 못난 사람이 아니다.
못난 사람은 농민이 아니다.
못난 사람이 아닌 농민이다.
농민은 양반이 아니다.
양반은 농민이 아니다. 양반이 아닌 농민이다.
농민은 양반이 아니다. 또 못난 사람도 아니다.

三. 자유

인생은 자유의 세상을 찾는다.
사람에게는 천부(천부)의 자유가 있다.
머리에 돌이 눌리우고 목에 쇠사슬이 걸리인 사람은 자유를 일은 사람이다.
자유의 세상을 우리가 찾는다.
자유의 생각은 귀하다. 나에 대한 생각 민중에 대한 생각
개인의 자유는 민중의 자유에서 나아진다.

四. 農民(농민)

우리 조선은 농민의 나라이다.

과거 4천여 년 동안의 역사를 도라볼 때 어느 때에 비록 하로라도 농업을 아니하고 사라 본 적이 없었읍니다. 역사의 첫머리 붙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혀 농민의 나라인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입니다. 또 현재를 살펴볼 때 全朝鮮 人口의 十分之 八이 논에 밭에 산에 나서고 있으니 온 세게를 통터러 본다 하더라도 우리 조선과 같이 철저한 농업국은 다시없슴니다. 오늘날 조선에 있어서 總生産 十八億圓 가운데서 농산물이 十三億圓을 차지하고 있어 이것 때문에 우리의 목숨이 사라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어느 것 하나가 농미이 손과 발이 가지 아니하고 되는 것이 없읍니다. 2천 5백만 인구가 논에서 밭에서 산에서 귀중한 땀을 철철 흘리면서 만드러 내는 것입니다.

二.
조선에서 주人公인 농민은 이때까지 主人 대접을 몯 받고 살아왔읍니다. 그까짓 農軍놈들 村놈들이라고 학대하고 멸시함이 정말 혹독하였읍니다. 온 世上이 다 농민을 사람으로 역이지 아니하여 조금도 돌보지 아니 하였읍니다. 따라서 朝鮮의 主人인 농민은 도리혀 헐벋고 굶주리고 불상한 가난뱅이가 되었습니다. 主人이 못살면 다른 사람도 따라서 못 사는 법입니다. 우리 조선에서는 농민이 이 처럼 가난하다는 것은 결국 全조선이 못살게 되고야 마는 것임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모든 힘을 農民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三.
농사는 天下의 大本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닢니다. 이것은 억萬年을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잎니다. 사람의 먹고 사는 식양品을 비롯하여 의복 주옥의 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상엎, 공엎의 원료까지 하나도 농업 생산에 기다리지 않는 것이 없느니 많지 농민은 世上 人類의 생명 창고를 그 손에 잪고 있읍니다. 우리 조선이 돌연히 상공엎 나라로 변하야 하로앛음에 농업은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 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上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은 사실잎니다. 그럼으로 農民의 世上은 무궁무진핲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어느 사회나 국가나 민족이나 한 덩어리로 이루어질 때는 반듯이 그 가운데에 절대다수를 차지한 계긒이 그 사회나 국가나 民족의 지칟돌이 되며 기둥이 되는 것이니 이것을 볼 때에 조선의 장래는 農民의 것이 안 될 수 없읍니다. 다시 말하면 농민의 손으로써 農民을 본위로 한 정치와 경제와 문학과 예술과 교육이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五. 소금과 사탕

소금이나 사탕이나 上品은 빛이 하얀 까닭으로 엂잇 보면 꼭 눈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맛은 하나는 짜고 하나는 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금은 김치, 간장, 곳오장 담그는데 쓰고 샅앙은 과자들만듥어나 단 맛을 내는 양념으로 씁니다. 소금과 사탕은 이와 같이 飮食의 맛을 낼 뿐 아니라 물건의 썩음을 방할 수 있는 까닭으로 생선 같은 것을 소금에 저리고 과실 같은 것을 샅앙에 저리는 것이옰이다. 소금은 飮食으로 업지 뫁할 물건이 될 뿐 아니라 또 工業에도 긴요한 감이되는 것이 옰이다. 소금은 바위소금이라고 山에서 파 내는 것도 있지만은 우리 朝鮮것은 바닿물에서 소금기를 뽑아 만드는 것이 옰이다. 그 만드는 법에는 가마에 고는 것과 햇빛에 쪼이는 것 두 가지 방법이 있읍니다. 가마에 고는 것은 우선 바닿가에 소금밭을 만들고 거기다 바닷물을 대어 진한 소금물을 만들어 가지고는 이것을 가마에다 붛고 불을 때 고면 물기는 날여가고 가맣 바닥에 소금만 남게 됩니다. 햇빛에 쪼여서 것은 바닿가 평평한 바닥에다 소금밭을 나라니 만들어 놓고 처음에는 바닿물을 맨 첫밭에 대어 가지고 햇빛에 쪼여서 물기를 날ㄹ이게 합니다. 그래서 그 물이 짆아게 되면 둘재 밭 셋재밭으로 차차 넘겨 대서 맨 나중 밭으로 가면 물기는 다 날ㄹ아가고 소금이 됩니다. 가마에 고는 법은 朝鮮 각처에 다 있지마는 햏빛에 쪼이는 법은 京畿道 朱(주)安(안)과 平安南道 廣(광)粱(량)灣(만) 두 군데 밖에 없읍니다. 朝鮮에서 바다가 없는 곳은 忠淸北道 뿐이고 그밖에 달은 道에는 모두 바다가 있기 때문에 소금밭 없는 곧은 없읍니다. 그러나 가장 성풍하게 소금을 고는 道는 全羅南道 옰시다. 朝鮮서 나는 소금의 3分之 1以上은이 道에서 나고 그 중에도 羅(나)州(주) 소금이 제일 유명합니다. 경기도가 그 다음은 되고, 南陽소금도 매우 유명합니다. 朝鮮 전체에서 나는 소금이 대강 1百 50萬石 가량은 되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ㅎ아기 때문에 日本과 中國서 많이 사들입니다. 샅앙수수는 熱帶地方 또는 熱帶地方 갖가운 곧에서 나는 식물인데 일본 남쪽 九州, 四國과 대만에서 나고 그중에도 유명하기는 대만이 옰이다. 샅앙은 또 샅앙무로도 만듭니다. 사탕무는 온대 지방에서 되는 것인데 서양서는 대개 이것으로 샅앙을 만들고 그 중에도 유명한 나라는 독일입니다. 우리 조선도 평양에서는 이것을 심어서 샅앙을 만드는 회사가 있습니다.

六. 農民과 공동 정신

1. 독잎적 정신이 朝鮮을 살ㄹ이는 원동력인 것과 같이 농민의 共同정신이 또한 朝鮮을 살ㄹ이은 긴요한 하나입니다. 독불장군이라는 말과 같이 한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렇게 하야도 익이기 어려운 일을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하면 넉넉히 익이는 것입니다. 千가지 萬가지로 낡고 물들고 덜엎고 몯 생긴 것을 묻찔ㄹ어 버리고 새롶고 순수하고 꺃끝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싸아놏이 안으면 안될 朝鮮의 농민으로서는 무엇보다도 경우와 이해를 같이 하는 사람끼리 一致共同의 필요를 절실히 늒입니다.

2. 크게는 끄만두고 사소하게 본다 하더라도 共同耕作이라든가 혹은 농사에 관한 各種 結合이라든가 또는 상공엎자가 벌이고 있는 商利의 그물을 벗어나는 消費 판매에 대한 組合과 같은 것도 또한 그러하야 농민의 一致 共同 아니고는 됤우가 없는 것입니다. 農業者의 사이에는 다른 商工業者 같은 격렬한 生産 販賣上의 경쟁이 없습니다. 이 경쟁심이 박약하니 만ㅊ이 이 일에 대한 공동이 잘되지 아니하였지만는 오늘과 같이 農村이 말올되게 겇을어지고 농민의 살ㄹ임살이가 극도로 글ㄹ엊어서 전 民중의 生命이 뿌리로붙어 뒤흔들ㄹ이게 된 이때를 당하여 경우가 같은 이해가 같은 사람들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일ㅊ이 공동의 정신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3. 우리는 "내 밭만이 잘 닷을여져서 농사가 잘 된다하야 달은 사람의 밭은 겇일어지건 말건 그깢짓 일은 상관할 것 없다"고 하여서는 안됩니다. 내 한 몸을 잘살게 하기 위해서는 내 사는 농촌을 발오잡아야 되고 내 사는 농촌을 발오잡기 위해서는 마을에 있는 같은 경우의 사람들의 단合이 안이고는 안 될 것이니 설오 미약하나마 있는 힘을 다하야 끝끝내 나아가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묶어노은 화살 단은 풀어노은 외대 살보다는 강하고 시베리아 넓은 번판에 있는 굴ㄹ에 벗은 말들은 이리의 침해를 막이 위하여 떼를 지어 단인다 합니다.

七. 린컨의 고학

린컨은 아메리카 合衆國(米國)의 열여섯재 大統領 옰이다. 린컨은 지금으로붙어 百餘 年 前에 米國 켄터키 州에서 시골 한구석 구차한 집에 태어났읍니다. 린컨이 일곱 살 되던 해에 안듸아나 州 ......(편집자 주 - 이하의 글은 6·25동란 중에 소실되었음)

- 「윤봉길전집」 (896 ~ 910) -제1권 시문과 농민운동- 중 농민독본 내용 발췌

"독서회"

윤봉길의사는 야학운동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발표하셨다.

  • 1. 야학의 학습내용을 더욱 충실히 하자.
  • 2. 독서를 활성화하자.
  • 3. 한 달에 1회 계몽강연회와 토론회를 열어 학습을 평가하고 의견을 개진하자.

이에 독서를 활성화하기 위해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서울 유학 중인 사촌동생 윤신득(윤은의)에게 독서회에서 사용할 만한 책 송부를 요청하였다. 공주 영명학교를 졸업한 벗 정종갑에게도 신간 잡지 등을 기탁해 주길 부탁하였고, 서울 배재고보 졸업 후 낙향한 윤세희에게 야학 강사를 부탁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모은 책을 회원들끼리 돌려가며 읽고 토론을 하였다. 윤봉길의사는 야학 운영에만 만족하지 않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에 옮겼다.

"농촌부흥운동"

농촌부흥운동 및 목계농민회 월진회 역사 기록

윤봉길의사는 「농민독본」을 통해 조선은 농민의 나라이며 농사는 식품, 의복, 주택, 상업, 공업 원료에까지 사용되기 때문에 농사가 천하(天下)의 대본(大本)이라고 밝혔다. 조선이 돌연히 상공업의 나라로 변한다는 것은 역사의 발전과정에 대한 필연의 현상으로 가정하고 그러한 때가 도래하여도 인류의 생명 창고를 잡고 있는 것은 농민이고 절대 다수를 차지한 계급이 농민이기 때문에 민족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조선의 장래는 농민에게 있기에 농민이 실력을 양성하여 농촌이 부흥할 수 있도록 하여 농민 본위로 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ㆍ목계농민회

윤봉길의사는 농민의 경제 자립을 위하여 농촌부흥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그 첫 시작이 목계沐溪농민회이다. 목계란 가야산에서 발원하여 덕산 시량리의 도중도로 흘러 내려오는 시내의 명칭이다. 실천 목표는 첫째, 증산운동, 둘째, 공동구매조합 결성이었다.

증산을 위해 농업 방법을 개선하고 특용작물을 재배하여 생산량을 늘리고자하였다. 고구마 재배법을 개선하고 양잠 및 부업 권장하였다. 부업 장려 방안으로 양돈을 추천하였다. 이때 돈이 없어 돼지를 살 수 없는 농민에게 돼지를 무료로 주고 새끼를 낳으면 그 절반은 기른 농민에게 나머지는 또 다시 다른 농민에게 주는 수내제도를 개발하여 실천하였다.

공동구매조합은 농민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비싼 값에 공동 판매하고 일용품이나 비료 등 필요물품을 도매로 싸게 공동 구매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농민회의 활동은 후에 월진회로 발전되어 더욱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며 효율적인 부흥운동을 이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러한 통찰력을 가지고 야학을 운영하여 이웃들을 무지의 늪에서 이끌었고 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농촌부흥운동에 힘을 쏟았다. 일제강점기 가난했던 농촌생활을 개선하고 부흥시키기 위한 방안들을 마련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목계농민회를 조직하였다. 조직한 단체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부흥원을 건립하였고 목계농민회는 월진회로 발전하여 농촌부흥운동에 대한 윤봉길의사의 사상이 하나씩 실현되었다. 이외에도 농민들의 건강한 신체 단련을 위해 수암체육회를 만들어 운영하였으며, 위친계를 조직하여 큰 비용이 드는 상·장례 또는 경사 시 물질적인 부담을 대비하고 서로 돕는 미풍양속을 만들어 이웃 간 친목을 도모하게 하였다.

부흥원
부흥원

1928년 2월 25일 건립된 부흥원

부흥원은 음력 1928년 2월 25일(양력 4월 15일) 윤봉길의사가 마을을 부흥시킨다는 의지를 담아 마을 청년들과 함께 지은 집이다. 부흥원을 짓기 위하여 마을 유지인 윤주봉, 박낙용, 이성래, 김홍기 등이 후원하였다. 부흥원은 야학당ㆍ농민공회당ㆍ구매조합ㆍ월례 강연회ㆍ월진회 사무소로 사용되면서 농촌계몽운동과 부흥운동의 근거지의 역할을 하였다.

부흥원에 사용된 대들보

1928년 2월 25일(음력) 정오에 거행된 부흥원 상량식에 사용된 대들보이다. 상량문은 윤의사의 자필로 쓰여졌다. 당시 일제 연호인 소화(昭和) 3년을 사용하지 않고 조선개국 연호인 단군기원(4261년)을 쓴 것으로 보아 윤의사의 자주성을 엿볼 수 있다.

'조선이 개국한 지 4261년이 되는 무진년 2월 25일 오시에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올린다. 건물은 정남향을 향하고 있으며, 앞에 문필봉이 하늘높이 치솟은 명당인지라 재주 있는 후손이 끊이지 않으리라.'
수암체육회
수암체육회 운동장

수암체육회 운동장

1928년 부흥원 신축공사 이후 윤봉길의사는 체육진흥을 위한 방법을 구상하였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라는 말에 공감하여 체육은 단순한 몸놀림이 아니고 이를 통해 협동심, 투지, 불굴의 개척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효과적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신체 단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일찍이 1920년 서울에서는 조선체육회가 창립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수많은 체육단체들이 생겨났다. 1930년 말에 이르기까지 조선정구협회, 조선야구협회, 조선농구협회, 조선씨름협회, 조선축구심판협회 등이 결성되었다. 이러한 체육의 장려가 곧 민족의 단결을 강화하는 근원이 됨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대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천하게 여기던 유교적 사고가 농촌사회를 지배하였고 여전히 농민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버거웠던 시대에 농촌에서 체육활동이 장려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윤봉길의사는 서양은 건강을 조상 모시는 것만큼이나 귀하게 여기는데 이는 매우 합리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는 매우 근대적이며 선구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이에 윤봉길의사는 친구들과 함께 수암체육회를 정식으로 조직하였다. 마을 강가 약 1천 여 평을 마을 청년들과 함께 개간하여 운동장을 조성하고 이곳에서 달리기, 축구 등 각종 운동을 장려하여 청년들의 체력을 향상시키고 협동심을 키워주었다.

수암체육회 기록화

수암체육회 기록화

월진회
월진회기

월진회기
바탕색인 흰색은 백의민족의 표상이고 3줄의 청색은 3천리 금수강산을, 한가운데의 무궁화는 무궁하게 발전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윤의사는 음력 1929년 2월 18일(양력 3월 28일)에 농촌부흥을 목표로 월진회를 창립하고 회장에 취임하였다. 월진회는 '날로 앞으로 나아가고 달마다 전진하자'는 취지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회장인 윤봉길의사를 비롯하여 총 37명이 회원명부에 서명하고 인장을 찍었다. 사무소는 도중도에 건립한 부흥원에 두었다.

월진회의 설립 목적은 회원들이 상조상애(相助相愛)를 뜻으로 근검절약을 이행하여 양풍미속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월진회규칙'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윤의사는 「월진회 취지서」에 생존경쟁의 시대에 자급자족할 것과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것을 강조하였다. 문맹퇴치와 농촌부흥 그리고 애국사상 고취 등을 활동의 목표로 삼은 월진회는 「월진회약사」에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또한, 월진회기(月進會旗)의 바탕색인 황색(黃色)은 백의민족의 표상이고 3줄의 청색(靑色)은 3천리 금수강산을, 한가운데의 무궁화는 무궁하게 발전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ㆍ월진회의 5대 활동 목표
  1. 첫째, 야학을 통한 문맹퇴치운동
  2. 둘째, 강연회를 통한 애국사상의 고취
  3. 셋째, 공동경작과 공공식수를 통한 농촌경제 향상
  4. 넷째, 축산 등 농가부업과 소비조합을 통한 농가의 경제생활 향상
  5. 다섯째, 위생보건사업과 청소년의 체력단련을 통한 체력향상

윤봉길의사의 월진회는 그동안 전개해온 계몽운동과 부흥운동의 사상적 진수를 함축하여 실천으로 묶어낸 단체로, 실력 배양과 경제적 자립을 통하여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윤봉길의사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 창립취지서
  • 월진회 회칙
  • 월진회 금언
  • 월진회 회가
  • 창립회원명부
월진회 창립취지서
월진회 창립취지서

월진회 창립취지서

ㆍ월진회(月進會) 창립취지서(趣旨書) <전문>

만천하의 동포여! 18억의 인류가 생명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존경쟁에 천촉되어 만감(萬感)이 교지(交至)하매 그 좁은 심장이 찢어질 뿐이다. 만감(萬感) 만상(萬象)이 그 과연 어떠한 감상일까?
그야 물론 천차만별이겠지마는 일언이 폐지하면 고락(苦樂) 두 자로 편성되었도다! 환언하면 즉 남과 같은 사업을 성공하려고, 남과 같은 행복을 안형(安亨)하려고 노력을 할 때에 도덕과 인륜(人倫)을 허신적(許身的) 같이 내어 버리고 자아주의(自我主義)로 황금만능을 부르짖으며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관자(管子) 왈 창름(倉廩)이 실(實)이라야 지영욕(知榮辱)이라 하였고, 맹자 왈 인무항산(人無恒産)이면 구무항심(苟無恒心)이라 하였으니 신사언야(信斯言也)하여 현대를 고찰하면 우리는 자작자급(自作自給)에 힘을 써서 나의 전도를 내가 이행(履行)하며 나의 운명을 내가 개척지 아니하면 불가한 것은 삼척동자도 지실(知悉)하는 바이다. 근위무가지보(勤爲無價之寶)요 천불능궁력사가(天不能窮役事家)라 하였으니 근검하면 될 것은 자연의 이치요, 춘불경작(春不耕作)하면 추무소망(秋無所望)이라 하였으니 노후에 안락을 누리려면 유시의 근검 저축은 당연지리요 불가결자(不可缺者)이다. 태산이 불양토양(不讓土壤) 고로 능성기대(能成其大)하였고 하해(河海)가 불택세류(不擇細流) 고로 능취기심(能就其深)하였나니, 유원(唯願) 첨위(僉位)는 물이망언(勿以妄言)으로 치지도외(置之道外)하시고 묵연히 과거를 회억(回憶)하시며 미래를 연상하시와 성연분비이(成然奮臂而) 본회에 광림하시와 원조하심을 경요(敬要)함.

1929년 4월 23일
윤봉길

월진회 회칙 전문
제1장 : 준칙(準則)

제1조 본회는 월진회라 칭함.
제2조 본회의 사무장소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柴梁里) 부흥원(復興院)으로 정함.
제3조 본회의 회원은 상조상애(相助相愛)를 지(旨)로 하고, 근검절약을 여행(勵行)하여 생활의 안정을 도(圖)하고 공히 양풍미속(良風美俗)에 함양(涵養)함을 목적함.
제4조 본회는 원도양리(元島梁里)에 품행이 방정하고 심성이 정일(靜逸)하며 효제돈행(孝悌惇行)하는 제씨를 택하여 선량한 국민과 건전한 공민(公民) 될 본질을 수양하기 자각 진행자로 조직함.
제5조 본회는 매월 1회씩 정기총회를 개최하여 유익지언(有益之言)을 강연하며 회원의 실행할 사항에 대하여 협의함.
제6조 본회의 창립일은 1929년 음(陰) 기사(己巳) 2월 18일인 바, 이날을 영원토록 명심 불망키 위하여 매년 기념식을 행함.
제7조 본회원은 모쪼록 빈귀(貧鬼)를 축출하며 빈한의 선망(線網)을 탈하여 창창한 전도의 행복지(幸福地)를 받아 미래의 안락을 도(圖)키 위하여 매월 총회마다 저금 10전씩 하기로 의무함.
제8조 본회의 유지 기간은 전진과 후진의 연락을 친밀히 하여 여천지무궁(與天地無窮)으로 함.
제9조 본회의 매월 총회 일시는 14일 오후 7시로 함. 우천이면 순연(順延).

제2장 : 심득(心得)

제10조 본회원 중에 부정한 악행위를 하여 본회의 체면을 오손할 시는 효유(曉諭)시키되 만약 듣지 아니하면 제명 탈퇴케 함도 유함.
제11조 본회원 중 성의가 부족하며 근검에 노력지 아니하여 매월 저금 십전이라는 것을 지출치 못하고 1개월이라도 초월하면 전(前) 저금액이 기백원에 달하였을지라도 무효로 인정함.
제12조 본회원이 무고이연어해태(無故而緣於懈怠)하여 인편에 금전만 부송하고 불참할 시는 과태에 처벌함도 유함.
제13조 만약 부득이한 사고에 의하여 불참하게 될 시는 그날 7시 전에 미리 통지하거나 혹은 자질(子嫉)이나 대림(代臨)함도 득(得)함.
제14조 본회원 중 형편에 의하여 타처에 이사 시는 자초지금(自初至今)의 저금액을 환출함.
제15조 특별 근무사항이 유지즉출품우회석(有之卽出品于會席)하여 회시우회원(回示于會員)하여 해태자(懈怠者)의 마음을 경성케함.
제16조 본회의 저축금은 익일에 즉시 고덕(古德) 금융조합 삽교(揷橋) 출장소에 저금하되, 회장 및 이사의 2인 이름으로 하고 저금통장은 고문에게 보관함.

제3장 : 역원(役員)

제17조 본회의 임무 직원은 다음과 같이 치(置)함.
   회장 1인, 고문 2인, 이사 1인, 간사 2인
제18조 회장은 제반 사무를 앙장(革央掌)하여 총회마다 앞의 제5조에 관하여 유익한 말과 실행사항을 논술함.
제19조 고문은 회무에 질서 문란한 폐단이 없도록 보도(輔導)함.
제20조 이사는 회장의 명을 승수(承受)하여 회무를 통리하고 회장이 사고가 있을 시는 이를 대신하며 제반서고(書稿)를 장리(掌理)하고, 매월 회원의 저축금을 출석부 호명 순서에 의하여 영수함.
제21조 간사는 회장의 논술을 자문하며 원조하여 공중의 혐기(嫌忌)한 감(感)이 없도록 함.
제22조 단, 이상 역원은 각기 임무 종사하여 무태기직(無怠其職)이라야 내안기신(乃安其身)하며 내보차회(乃保此會)하리니 육력독행(戮力篤行)함.

제4장 : 문부(文簿)

제23조 본회의 문부는 다음과 같이 치(置)함.
   - 규칙부
   - 잡비 지출부
   - 세말 결산부
제24조 무부 정리에 대하여 개첨호묵(改添糊墨) 등은 상란(上欄)에 정정표를 기재하고 이사(理事)에 인장을 날인 함.

제5장 : 사업경영(事業經營)

제25조 본회의 자산이 풍부할 시는 다소 물품을 구입하여 본회원은 특염가로 배부할지니 타점(他店)의 물품을 사용치 아니하기로 함.
제26조 물가를 저렴하고 장래에 확실히 견리(見利)를 요할 때에는 하물(何物)이든지 무역함도 득(得)함.
제27조 본회에 대하여 생기는 잡비는 자금 중에서 삭제함.

제6장 : 보충

제28조 이상 규약에 변경 또는 보충할 조건이 있을 시는 회장이 통가우회원(通可于會員)하여 반수 이상에 의하여 결정하되, 만약 평등될 시에는 회장이 가부를 결정함.
제29조 회원 중에 만약 유언지즉(有言之卽), 회장에게 필히 언권(言權)을 득한 후 논술함.
제30조 본회의 규칙을 일일이 준수하기로 각자 서명 날인함을 요함.
제31조 회원은 앞의 3조와 7조의 목적을 달성키 위하여 농업에 근무하고 농한시(農閑時)를 이용하여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필히 야학에 입학하여 몽매(蒙昧)함을 각성케 함.
제32조 불행히 회원 중에 사망자가 있을 경우 앞의 8조에 의하여 그 자질(子姪)이 대행함도 득(得)함.
제33조 본 회원은 전기 목적을 함양하여 덕업상권(德業相勸)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휼) 과실상규(過失相規) 근검경제(勤儉經濟) 자제교육 등을 독행(篤行)하기로 자담(自擔)함.
제34조 본회는 앞의 5조에 의하여 유익지언(有益之言)을 강연할 시는 회장 이외에 유지 청년의 학식 경험이 있는 자 득(得)함.
제35조 본회원 중 만 5개년간 결석치 아니하고 또는 매월 근무사항이 있는 회원에게 포상(褒賞)을 수여함.
제36조 회(會) 외인(外人)이 채권으로 인하여 회원의 자금을 청구하거나 또는 관력(官力) 집행 등의 일은 일절 거절함.

월진회 금언(金言)
월진회 금언 원문

월진회 통장

월 (月) … 월지광 (月之光) 으로써 일락지암 (日落之暗) 을 다시 밝힐 수 있으리니
진 (進) … 진행곡 (進行曲) 에 발을 맞추어 한 마음 한 뜻으로
회 (會) … 회 (會) 의 준분 (準分) 을 간폐 (肝肺) 에 굳세게 명각 (銘刻) 하여
금 (金) … 금 (金) 과 같이 당당한 만중 (萬衆) 의 숭배물 (崇拜物) 이 되어보자
언 (言) … 언약불수 (言若不守) 면 불신 (不信) 이요 불신이면 비인 (非人) 이다.

ㆍ설명

이 금언을 통해 월진회의 참뜻을 되새겨 볼 수 있다. "월지광으로 일락지암을 다시 밝힐 수 있다"는 표현이 바로 월진회의 참 뜻을 가르쳐 주는 셈이 된다. 즉 해가 지면 달빛으로 어둠을 밝힌다는 뜻이니, 비록 나라는 잃었어도 청년들이 노력하면 그것으로 시대의 어둠을 밝히며 조선독립을 되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월진회 금언에 이어 윤봉길의사가 작사한 월진회가에도 월진회의 참 뜻과 목표가 잘 표현되고 있다.

월진회 회가(會歌)
1. 조화신공(造化神功) 가야산의 정기를 받고
1. 절승경개(絕勝景概) 수덕산의 정기를 모아
1. 금수강산 삼천리 무궁화원에
1. 길이길이 빛을 내는 우리 월진회.
2. 가야산은 우리의 배경이 되고
2. 온천들은 우리의 무대장 (舞臺場) 이라
2. 두 팔 걷고 두 발 벗고 출연하여서
2. 어서 바삐 자작자급(自作自給) 실현을 하자.
3. 암흑동천(暗黑東天) 계명성 (啓明星) 이 돋아 오나니
3. 약육강식 잔인성을 내어 버리고
3. 상조상애(相助相愛) 넉 자를 철안(鐵案) 삼아서
3. 굳세게 단결하자 우리 월진회.

윤봉길 작사

월진회회원명부
창립회원명부 (1929.04.23)

창립회원명부 (1929.04.23)

구분 성명
회장 윤봉길(尹奉吉)
이사 정종갑(鄭鍾甲), 정종호(鄭鍾浩)
고문 윤순의(尹舜儀), 김흥기(金弘基), 이성래(李成來)
간사 이태경(李泰敬)
회원 이아망래(李我望來), 윤창의(尹昌儀), 이민석(李敏錫), 서고불(徐枯佛), 윤주성(尹柱成), 서득천(徐得天), 황복해(黃福海), 정종국(鄭鍾國), 황복산(黃福山), 이수덕(李壽德), 문봉안(文鳳安), 윤성의(尹聖儀), 정기봉(鄭基峰), 김금제(金今世), 인이길(印利吉), 박택복(朴澤福), 고인화(高寅和), 이명복(李命福), 장준영(張俊榮), 박태원(朴泰源), 김순동(金順童), 백창기(白昌基), 이산홍(李山紅), 윤복만(尹福灣), 가정로(賈貞魯), 방한세(方漢世)

"위친계"

위친계 취지서 자필 붓글씨 서류 원본

위친계 취지서

음력 1929년 10월 10일(양력 11월 10일) 시량리 이태경의 집에서 윤봉길의사를 비롯한 5인이 발기인이 되어 조직하였다. 윤의사가 서기를 맡아 장부를 정리했고, 출자금으로 5원씩을 내게 하였다. 취지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버이 봉양과 상례를 극진히 하는데 목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어버이 봉양과 장사지내기를 진심을 극진히 해야 자식된 도리를 다했다 할 수 있을 것이요, 예의란 것은 물질이 따르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부모가 연로한 사람들이 매달 또는 계절마다 회비를 내어 경사스런 날이나 돌아가셨을 때 혹은 다른 큰 일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위친계는 경로위친의 미풍양속을 생활화하며 계원 간에 서로 돕고 친목을 돈독히 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청년들이 다수 가입하였고 마을 어른들이 이들의 뜻을 가상히 여겼다고 한다.